벤 : 난 가끔 비닐하우스를 태워요.
종수 : 뭐라고요?
벤 : 가끔 비닐하우스를 태운다고요. 난 비닐하우스를 태우는 취미가 있어요. 들판에 버려진 낡은 비닐하우스 하나를 골라 태우는 거예요. 두 달에 한 번쯤? 그 정도 페이스가 제일 좋은 거 같아요, 나한테는.
종수 : 페이스요? 그러니까 남의 비닐하우스를 태운다는 건가요?
벤 : 당연히 남의 거죠. 말하자면 범죄 행위죠. 종수 씨와 내가 이렇게 대마초 피우는 것처럼. 명백한 범죄 행위. 그런데 아주 간단해, 진짜. 석유를 뿌리고 성냥불만 던지면 끝. 다 타는 데까지 10분도 안 걸려요.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지게 할 수 있어요.
종수 : 잡히면 어쩌려고..
벤 : 아, 안 잡혀요, 절대. 한국 경찰이 그런 데 신경 안 쓰거든요. 한국에는요 비닐하우스들이 진짜 많아요. 쓸모없고 지저분해서 눈에 거슬리는 비닐하우스들. 걔네들은 다 내가 태워 주기를 기다리는 거 같아요. 그리고 난 그 불타는 비닐하우스를 보면서 희열을 느끼는 거죠. 그러면 여기서, 여기서 베이스가 느껴져요. 뼛속까지 울리는 베이스..
종수 : 그게 쓸모없고 불필요한 건지는 형이 판단하는 건가요?
벤 : 난 판단 같은 거 하지 않아요. 그냥 받아들이는 거지. 그것들이 태워지기를 기다리고 있다는걸. 그건 비 같은 거예요. 비가 온다, 강이 넘치고, 홍수가 나서 사람들이 떠내려간다. 비가 판단을 해? 거기에 옳고 그런 건 없어요. 자연의 도덕만 있지. 자연의 도덕이란 동시 존재 같은 거예요.
종수 : ‘동시 존재’?
벤 : 난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다. 난 파주에도 있고 반포에도 있다. 서울에도 있고 아프리카에도 있다. 그런 거. 그런 밸런스?
종수 : 그럼 제일 최근에 태운 건 언제였는데요?
벤 : 아, 그게 아프리카 가기 직전이었으니까 한 두 달 됐네? 이제 태울 때가 됐다는 얘기지.
종수 : 이 다음에 태울 비닐하우스도 벌써 정해졌겠네요?
벤 : 응. 정해졌지. 아주 태우기 좋은 거. 오랜만에 태우는 재미가 있을 것 같아요. 사실은 오늘 사전 답사를 온 거예요.
종수 : ‘사전 답사’? 그럼 이 근처에 있는 거예요?
벤 : 네. 여기서 가까운 곳에 있어요. 아주아주 가까운 곳.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