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37년차…배우는 내 인생의 전부
요즘은 동네 걷고 사람 만나며 힐링
다시 태어나면? 배우말고 다른 인생
“오랫동안 배우로 살아왔는데 도전이 망설여진다면 그건 대중에 대한 배신 아닌가요. 망설여질 때도 있죠. 그래도 제 인생에 배우를 빼면 아무 것도 없어요.”
김희애(52)는 실제로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꾸준히 드라마에 출연해 왔지만 웬만해선 겹치는 역할이 없다. 최근 스크린에서도 더욱 과감한 변화를 모색한다. 14일 개봉하는 영화 ‘윤희에게’(감독 임대형·제작 영화사 달리기)가 그 연장선상에 있다.‘윤희에게’는 20년간 첫사랑의 비밀을 간직하다 딸과 떠난 여행에서 지난날의 자신과 마주하는 윤희의 이야기다. 김희애는 타이틀롤을 맡아 오랫동안 비밀을 품은 주인공의 심리를 섬세하게 표현한다. 비밀스러운 러브스토리이자 엄마와 딸의 여정을 통해 한 여성의 삶을 그리는 로드무비를 완성한 김희애를 11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오랜만에 만족스러운 작품을 내놓은 덕분일까. 김희애는 배우로 살아온 30여년의 시간을 돌아보며 달라진 마음가짐을 풀어냈다. 고등학생 때인 1983년 데뷔해 인생의 3분의2의 시간을 연기자로 살아왔으니 “배우를 빼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고 말하는 것도 수긍이 간다. 이런 말을 꺼낸 뒤엔 으레 ‘다시 태어나도 배우를 하겠다’는 부연이 붙어야 할 것 같지만 김희애는 “다시 태어나면 왜 배우를 하겠느냐”며 “다른 인생도 한 번쯤 살아보고 싶다”면서 웃었다.
-긍정적 에너지가 느껴진다.
"난 이런 인터뷰 자리도 너무 좋다. 내 맘대로 실컷 이야기 해도 되는 날이니까 얼마나 감사한가. 남편? 애들? 내 이야기 잘 안 듣는다. 아하하. 요즘엔 아주 작은 것 하나 하나에 감사함을 느낀다. 예전에는 스쳐 지나갔을 법 한 것들이 눈에 들어오더라.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가 현재의 모든 것이 행복하고 감사하다."
-나이가 들면서 작품 선택의 기준점이 달라지기도 했나.
"아직은 운이 좋아서 좋은 작품을 많이 하고 있지만 아마 점점 더 힘들어지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매 작품, 매 캐릭터가 선물처럼 감사하다. 배우로서는 일을 계속 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분량을 떠나 작은 역할이라도 배우 김희애가 할 수 있고, 배우 김희애로 인해 작품이 돋보인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
-'허스토리' '윤희에게' 모두 주체적 여성 캐릭터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끌릴 수 밖에 없다. 나와주고 만들어지면 감사한 작품들이고. 이제 곧 고모, 이모 등 캐릭터로 물러나게 될테지만 그 또한 작품을 구성하는 캐릭터고 꼭 필요한 인물들이다. 그리고 젊은 배우들만 데리고는 작품 못 만든다. 우리가 또 서포트를 해주고 그래야지. 하하."
-'배우로서 이제 무르익은 것 같다'는 말을 했다.
"하고 보니 좀 조심스럽더라. 우리가 후배들을 볼 때 어떤 배우가 '지금 이 나이가 절정이야'라는 말을 하면 농담 삼아 '뭐래, 더 살아 봤어? 그럼 우린 땅 속이야?'라고 하게 되지 않나. 한참 활동하고 계신 선생님들이 우리를 보면 같은 생각을 하실 것 같더라. 실제 내 또래의 당대 최고 남자 배우가 비슷한 이야기를 했더니 신구 선생님께서 '너희들은 꽃봉오리야~'라고 하셨더라. '맞네, 맞아' 싶었다.(웃음)"
-'비로소 배우가 된 것 같다'는 말도 했고.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결국 배우다. 배우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내가 누군데'라는 것을 버리고 가장 일상적인 삶을 살면서 스스로를 컨트롤 해야 배우로서의 삶도 이상적이지 않을까 싶다. 그런 면에서는 조금씩 자리를 잡아 가고 있는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