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 리그 심사를 마치고.

훌륭한 배우를 꿈꾸며 오디션 리그에 참가하신 여러분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번 오디션은 배우들과 충무로 현장의 젊은 감독들이 직접 얼굴을 맞대고 만나게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뜻 깊었습니다. 하지만 오디션이라는 선발 과정의 특성상 어떤 사람은 뽑히는 기쁨을, 다른 많은 사람들은 뽑히지 않는 실망을 맛봐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누구는 시험에 붙었고, 누구는 떨어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디션은 정확한 점수로 평가되는 수능이나 토익시험이 아닙니다. 어쩔 수 없이 심사위원들의 개인적 성향이 많이 반영되며, 배우 자신이 준비한 연기의 종류와 그날의 컨디션, 그리고 운에 따라 큰 편차를 보입니다.

이번 오디션 리그 최종 심사 회의 과정에서도 28명의 최종 선발자들의 오디션을 동시에 함께 보고도 심사위원 6명의 의견이 매우 분분했기에 의견을 좁히는 것이 쉽지 만은 않았습니다. 이는 심사위원들의 성향에 따라 배우 선택의 폭이 매우 달라진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줍니다. 게다가 이번 오디션은 배우의 연기 실력 뿐 아니라 오디션 리그 자체의 성격(개성 있는 특정 캐릭터가 아닌 보편적으로 발전 가능성이 높은 배우가 더 유리한)에 따라 희비가 엇갈렸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다시 말해 이번에 선발되지 않은 분들도 특정한 캐릭터를 원하는 작품이나 또 다른 심사위원들과 함께 오디션을 본다면 얼마든지 뽑힐 가능성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디션을 매번 진행하면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안타까운 점들도 있었습니다. 이번에 오디션을 처음 보는 분들도 있고 수없이 많이 보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오디션이란 떨어지기 위해 보는 것이라고 말들을 하지만 몇 가지 점만 주의한다면 선발될 확률이 더 커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번 오디션 리그에 참가하신 분들이 다른 오디션에서 더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몇 가지 조언을 드리고 싶습니다.

첫 번째, 드라마나 영화의 씬에서 뽑은 자유 연기를 보여줄 때 해당 드라마나 영화의

배우연기를 절대 따라 하지 마십시오. 물론 참조는 할 수 있겠지만 그 배우의 말투나

연기를 자꾸 따라 연습하면 진정한 감정을 보여주기 힘들게 됩니다. 그리고 해당 배우가

연기를 완벽히 잘 한다고 보장할 수도 없기 때문에 따라서만 한다면 그것은 누가 봐도

흉내내기에 불과하지 진짜 연기라고 느껴지지 않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대사만 뽑아올 뿐

모든 것은 연기자 자신의 실제 목소리와 감정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배우 김윤석, 고현정,

전도연의 연기라 해도 실제로는 배우 홍길동 자신이 늘 평소에 하는 말투, 감정표현 방식으

로 해 보이는 것입니다. 그럴 때 좀 더 진실되고 자연스러운 연기가 나올 것입니다. 아울러

너무 유명하고 개성 있는 배우-송강호, 오달수 등을 따라 하는 것은 자칫 비교가 되기에 손해가 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오디션 장에서 심사위원들과 불필요한 대화나 자기 소개로 연기의 에너지를 소모하지 마십시오. 커다란 목소리의 인사, 요란스런 자기 소개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차분하게 자신을 밝힌 후 곧 있을 연기를 위해 집중력을 유지하여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심사위원들에게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가상의 상대 배우와 함께 연기를 해야 합니다.

심사 위원들을 사람 취급하지 마십시오. 그냥 대충 인사나 하고 무시한 후 자신의 연기 세계로 곧장 빠져드시기 바랍니다. 물어보는 말에만 간단히 대답하면 됩니다. 연기 외의 것으로 심사 위원들에게 잘 보여봐야 아무 소용 없습니다.

세 번째, 오디션은 보통 혼자서 연기하는 것이므로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대사만 하게 됩니다. 이때 상대방이 있는 것처럼 늘 상상하고 상대가 말하는 것을 자신도 ‘들어야’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기 말만 외워서 줄줄 내뱉을 뿐 듣는 과정이 없습니다. 아무리 혼자만의 연기를 잘 해도 상대방의 말을 듣는 리액션이 보이지 않으니 진실되어 보이지 않게 됩니다. 이는 결국 자신의 대사도 외워서 말한다고 보여지게 만듭니다.

네 번째, 오디션은 매우 떨리는 게 사실이기 때문에 지원자들은 긴장을 풀려고 자꾸만 자기 자신을 편안하게 만들려 합니다. 그러다 보면 감정의 스위치가 내려가 실제 연기할 때 좀처럼 내면의 감정이 드러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떨고 있는 것이 창피한 것이 아니라 연기 못하는 것이 창피한 것입니다. 자신이 불편하고 버벅댄다고 자꾸 웃음짓거나 감정을 끌어올려 자기 암시를 걸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습니다. 스스로 불편하고 긴장된 상태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집중력을 발휘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자신이 대범한 척, 경험 많은 척 하다가 오히려 디테일한 연기나 내면의 감정을 놓칠 수 있습니다. 실수로 대사가 틀려도 다시 하면 됩니다. 하지만 감정이 안 드러나면 끝입니다. 긴장을 풀려다가 자신의 감정을 놓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다섯 번째, 자유 연기를 정할 때 사극, 너무 소리지르거나 욕하거나 절규하는 연기, 조용한 독백조의 대사는 피하십시오. 사극은 대사의 톤이 정해져 있어 감정표현이 힘들고, 목이 터져라 소리지르면 심사위원들이 짜증납니다. 그리고 독백조의 건조한 대사, 혹은 슬픈 대사를 길게 늘어 놓으면 역시 보는 사람들이 지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실제 성격이나 말투에서 너무 벗어나는 것을 고르지 마십시오. 스스로도 자신을 캐스팅해 보십시오. 멋진 역할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잘 할 수 있는 역할을 해야 최고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씬에서 다양한 감정이 표현될 수 있는 장면이 좋습니다) 아울러 심사위원이 다른 연기를 보여달라고 할 수도 있으므로 다른 톤의 연기가 들어 있는 장면 몇 개를 함께 준비해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리고 연극에서 뽑은 장면(특히 고전 연극)은 되도록 안 하는 게 좋습니다. 하더라도 철저히 영화적으로 바꾸어 사실적인 연기를 연습해야 합니다.

이상 다섯 가지를 간추려 보았는데 앞으로 이를 잘 생각해 보신다면 아마 좀 더 성공적인 오디션을 치를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행사를 도와주신 서울필름스쿨 측에도 감사드리며, 아무쪼록 오디션 리그에 참가한 여러분 모두에게 행운이 깃들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합니다. 앞으로 작업 현장에서 꼭 만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2010. 7. 14 

2010 오디션리그 심사위원장

감독 정윤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