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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과 교수들의 추천교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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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과 교수들의 추천교재
한국영화를 가르치는 데 마땅한 교재가 없음을 토로하던 과거와 달리 최근 몇 년간 영화서적들이 봇물 쏟아지듯 출간됐다.
최근 몇 년간 영화서적들이 봇물 쏟아지듯 출간됐다. 대학에서 영화를 가르치고 있는 교수들에게 당신이 가장 추천하고 싶은 영화교재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영화 교과서의 원전이라 할 <영화예술>의 데이비드 보드웰부터 왕성한 저작 활동을 펼치고 있는 프랑스 학자 자크 오몽, 한국영화의 거목 임권택에 관한 저서에 이르기까지 그 스펙트럼은 넓다. 과거의 영화서적 추천 리스트와 비교하면 눈에 띄는 대목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한국영화사를 조명하는 책이 현저히 많아졌다는 것. 최근 몇 년간 한국영화에 대한 다시 보기와 발굴작업이 활발히 이뤄졌다는 증명이기도 하다. 한국영화를 가르치는 데 마땅한 교재가 없음을 토로하던 과거와는 사뭇 달라진 환경이다. 당신은 이 리스트에 또 어떤 책을 보태고 싶은가?
개화기에 나온 영화사
권용민의 <한국영화사>(김미현 외 | 커뮤니케이션북스)
<한국영화사>라니. 제목만으로도 ‘학교’ ‘교재’ ‘연구’라는 단어가 마구 떠오른다. 도대체 언제 나온 <한국영화사>를 말하는 것이냐는 의구심이 들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영화사>는 그렇게 딱딱한 책도 아닐뿐더러, 출간된 지 1년도 되지 않았다. 또한 다수의 연구자들이 본격적으로 참여해 한국영화의 전사(全史)를 다룬 드문 책이라 할 수 있다. 기획을 맡은 영화진흥위원회 정책연구팀 김미현 팀장을 필두로 현재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30명의 영화계 필자들의 면면이 화려하다. 그 화려함이란 결국 절박함과 비장함으로 직결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이제라도 나와 다행’이라는 안도감을 주기도 한다.
책의 부제 ‘개화기(開化期)부터 개화기(開花期)까지’는 1897년 첫 활동사진이 국내에 들어온 때부터 가장 큰 꽃망울을 터뜨린 현재 영화들까지의 역사를 한 문장으로 압축하고 있다. 한국영화사를 10개 시기로 구분해 각 시기마다 내적, 외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여러 주제들로 다루고 있기에 일목요연하고 균형 있는 흐름을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한국영화란 애초에 수많은 굴곡으로 이뤄진 역사가 아닌가 하는 점에서,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홍익대학교에서 ‘영화학개론’과 ‘한국영화사’ 두 과목을 강의하고 있으며 현재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이기도 한 권용민 겸임교수는 “한국영화사 수업에서는 메이저 관객층이라 할 수 있는 학생들이 한국영화에 대한 조망이 가능하도록 하는 게 목표인데, 그런 점에서 고 이영일 평론가의 <한국영화사 강의록>과 함께 <한국영화사>가 현재 가장 좋은 교재”라고 말한다. '현재'는 <한국영화사>가 가장 좋은 교재지만 더 깊어지고 넓어진 한국영화 역사책들이 나오기를 바란다. 문성원 기자
명불허전의 바이블
서정남의 <옥스퍼드 세계영화사>(제프리 노웰-스미스 |열린책들)
영화 탄생 100주년을 기해 1996년 영국 옥스퍼드대학 출판부에서 펴낸 이 책은 원고 분량만 1만 장, 색인 항목도 1만 개가 넘는 영화를 주제로 한 대서사시다. <옥스퍼드 세계영화사>는 기존의 잭 C. 엘리스나 데이비드 보드웰의 <세계 영화사> 등 한두 명의 저자가 집필한 공전의 교본들과 달리 각 분야에 포진한 80명의 필진이 나눠서 글을 썼다. 덕분에 전문성과 다양성을 더욱 넓혔다는 평이다. 편집인인 제프리 노웰-스미스는 여러 필자들의 글을 잘 조합해 창대해진 영화의 과거에서 현재까지를 일관성 있게 배열, 정리했다. <옥스퍼드 세계영화사>의 가장 큰 특징은 이런 부류의 책들이 사전식 구성인 반면에 영화의 기술적 흐름과 산업과 제도, 장르 등의 흥망성쇠를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한 점이다.
특히 토마스 샤츠가 쓴 ‘할리우드: 스튜디오 체제의 대승리’같이 할리우드영화에 관한 글들은 이 책의 백미다. 계명대학교 연극영화과 서정남 교수는 “단일 미디어인 무성영화에서 사운드의 발전으로 복합 미디어인 유성영화로 바뀌는 과정과 1930년 경 할리우드가 암흑기를 극복한 물적 토대 등 그간 영화사적 맥락에서 중요했지만 그간 간과했던 부분들이 상세하게 기술돼 있다”며 “‘세계영화사’ 외에도 ‘할리우드영화의 이해’란 수업의 교재로 사용 중”이라고 밝혔다. 세계영화사라는 제목에 걸맞게 잘 알지 못했던 제3세계 영화역사에 대해 기본적인 이해를 하는 단초가 된다. 그 크기나 두께만큼이나 속이 깊고 너른 책이다. 김교석 기자
컷 단위로 고전들을 보다
신강호의 <영화사를 바꾼 명장면으로 영화 읽기>(신강호 | 커뮤니케이션북스)
책의 제목만 봤을 때는 가볍고 쉬운 역사서의 영화 버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책을 펼쳐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영화사를 바꾼 명장면으로 영화 읽기>(이하 <명장면>)에서 사진이 전면에 등장하는 이유란 목적보다는 필요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명장면>은 각 영화의 형식적 탐구를 통해 ‘무엇을 말할 것인가’보다 ‘어떻게 말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다. 시대와 장르를 넘나드는 익숙한 고전들로 채워져 있지만 각 영화들의 줄거리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책의 주인공은 영화의 키워드가 되는 한 장면의 컷들이다. 나열된 컷들이 갖는 의미는 글을 통해 영화 한 편, 한 편은 물론 영화사 전체로 확장된다. 결국 ‘활동사진’인 영화에 가장 어울리는 형식인 셈이다.
대진대학교 연극영화학부 신강호 교수가 쓴 <명장면>은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그의 ‘영화분석’ 수업에서 교재로 쓰이고 있다. 1997년부터 1998년까지 <씨네21>에 연재되었던 글들을 모은 것이지만 애초에 교재로 사용할 것을 염두에 두고 시작했기에 몇 년에 걸친 수정과 보완을 거쳐 2005년 출간됐다. 지면의 한계상 1,500자 안팎으로 쓰인 글의 양과 한두 컷밖에 쓰지 못했던 사진의 양은 대폭 늘어나 책에 어울리는 꼴을 갖췄다. 신강호 교수는 “영화사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영화를 본 사람들이 더 재밌게 볼 수 있다”고 말하지만, 소개된 영화를 보고 싶게 만든다는 점에서 고전영화들을 보기 시작한 이들도 충분히 즐길 만하다. 문성원 기자
한국의 영화학을 만들어라
정재형의 <투사하는 제국 투영하는 식민지>(김려실 | 삼인)
일제강점기 영화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미미하다. 아니, 한국영화사의 과거는 거의 잊혀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러 학자들이 한국영화사를 일컬어 ‘부모 없는 영화사’라고 말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최근 들어 그 잊힌 기억을 꼼꼼히 꿰맞추는 작업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 연세대 국문학과와 대학원에서 소설을 전공한 문학도이자, 일본 교토대학 인간환경학연구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 김려실이 쓴 <투사하는 제국 투영하는 식민지>는 바로 일제강점기 영화 연구에 대한 대표적인 성과라 할 수 있다.
‘1901~1945년의 한국영화사를 되짚다’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그간 ‘친일영화’라는 이름으로 비판받아온 한국영화의 또 다른 영역을 너른 시선으로 품고 있다. 식민지시대 문화를 바라보는 ‘수탈’과 ‘저항’의 민족주의적 이분법을 넘어 해방 이전 한국영화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자고 제의하는 것이다. 여러 학자들이 이 책의 적지 않은 오류에 대해 지적하고 있는 것이 아쉽지만 초기 한국영화사에 대한 재구성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는 크다. 국학을 경유한 영화학 연구에 관심이 큰 동국대 영화학과의 정재형 교수는 “요즘 <선도공부>라는 책도 수업교재로 사용하고 있는데, 언제나 학계의 분위기가 서구이론에 경도돼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며 “이 책 역시 포스트 식민주의라는 서구의 틀로 시작했다고 할 수 있지만, 기존의 식민사관을 벗어나려는 시도라 반갑다”고 말한다. 그렇게 한국영화사는 앞으로 더 많이 기록돼야 한다. 주성철 기자
임권택, 반세기를 잇는 여정
유지나의 <영화, 나를 찾아가는 여정>(임권택, 유지나 | 민음사)
<영화,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하 <영화>)은 1998년도 임권택 감독이 동국대 영화 전공생들을 대상으로 한 연출강의를 녹취해 동 대학 영화영상학과 유지나 교수가 풀고 몇 편의 평론을 엮은 연출 강의록이다. 장 뤽 고다르 같은 작가주의 감독들이 남긴 글이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연출론 책은 국내에도 번역 출간되기도 했지만 한국 감독들이 스스로 본인의 영화와 연출세계에 대해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서 책으로 선보인 것은 최초다. 책에는 임권택 감독이 강의에서 <만다라> <서편제> 등 자신의 대표작을 중심으로 제작기와 스스로 본인의 영화를 해부한 것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반세기 동안 영화를 만들어온 노감독의 태도와 인생관, 영화미학과 영화를 만드는 재미는 물론 현장의 생생한 감흥이 느껴진다.
<영화>를 영화분석, 평론과 관련된 수업의 참고 교재로 삼고 있는 유지나 교수는 “우리 영화역사의 축척된 경험을 자양분으로 삼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책을 기획했다”고 말한다. 영화를 보면서 진행된 강의인 만큼 장장 5년여의 제작기간을 들여 좋은 화질의 포스터와 앨범, 스틸 컷 등의 자료를 구입해 영화적인 책을 만들었다. 집념을 가지고 반세기를 살아남은 감독을 기록으로 남기고픈 소명의식. <영화>는 한국영화사의 정립을 위해 미처 시도되지 못했던 것들이 하나씩 실현되고 있는 최근 분위기에 한 몫을 하고 있다. 김교석 기자
자크 오몽 이미지학의 결정판
문재철의 <이마주> (자크 오몽 | 동문선)
자크 오몽은 데이비드 보드웰과 더불어 국내에 가장 많은 저서가 번역된 영화학자 중 하나다. 그가 쓴 <영화감독들의 영화이론> <영화 속의 얼굴> 등은 영화 애호가들의 필독서로 꼽히기도 한다. ‘까이에 뒤 시네마’의 평론가로도 활동했고, 현재 파리 3대학의 영화학 전공 교수이자 파리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영화예술사 연구회’를 이끌고 있는 그는 영화 이미지학의 대표적인 권위자라 할 수 있다. 중앙대 영화학과 문재철 교수는 “대학 저학년을 위한 모범적인 교재가 데이비드 보드웰의 <영화예술>이나 수잔 헤이워드의 <영화사전>이라면, <이마주>는 번역이 조금 아쉽긴 하지만 시각을 더 넓힐 수 있는 조금 더 상급의 교재”라고 말한다.
<영화 속의 얼굴> 같은 책들이 자크 오몽의 감성적 에세이에 가깝다면 <이마주>는 자크 오몽의 교과서적인 장점이 잘 드러나는 책이다. 그는 이미지를 인류학적, 문화적, 미학적 관점에서 총체적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여러 시각매체를 자유로이 넘나들며 기술한다. ‘시각예술’이라는 보편적 인식 아래서 <이마주>는 자크 오몽의 이미지학의 총정리라 할 수 있다. 문재철 교수는 “이미지를 바라보는 새로운 문제의식을 던져준다”며 “영화 속 이미지 외에도 고전적 의미의 서양 회화와 적극적으로 접목시켜 이미지에 대한 우리의 시선을 확장시켜준다”고 말한다. 이미지로 글을 쓰는 시대, 그 이미지는 여전히 흥미롭고 매혹적인 분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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